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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로잉_Movie Scenes Drawing

[영화 드로잉/Movie Drawing] 녹터널 애니멀스 :: 넌 슬픈 눈을 가졌어. 네 엄마와 똑 닮았지

by latebloomingrumi 2021.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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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은 관객이 영화에 대해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인상과도 같은 것으로 <녹터널 애니멀스>의 오프닝을 보면서 그저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어떤 흐름으로 영화가 진행될지, 무엇 때문에 이런 오프닝이 나오는 것인지 연관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기괴하고 신박한 <녹터널 애니멀스>의 오프닝.

 

 

눈 앞에 놓여진 뚱뚱한 여자들의 나체가 상하로 넝실넝실 움직이며, 접혀있는 살은 클로즈업으로 아주 느리게 보여준다. 요즘 사회가 규정짓는 이쁜 몸매와는 상반된 몸퉁아리를 갖고 있는 그녀들의 얼굴엔 저마다의 행복한 표정이 비치고 있다. 10초, 20초, 30초... 시간이 흘러갈수록, 내가 언제까지 출렁거리는 뱃살의 춤사위를 봐야 하는 것일까? 고역이다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들의 나체를 약 2분가량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썩 기분 좋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이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스토리와 어떤 식으로 연관이 있는 것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던 색다른 느낌의 오프닝은 '수잔'의 연출된 현대 아트였던 것으로 이어졌다. 보기 거북하다고 느끼던 것이 퍼포먼스였다고 하니 왠지 있어 보이는 느낌으로 탈바꿈 된 내 감정은 마치 영화 속 '수잔'의 솔직하지 못한 위선적인 성격을 은유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연출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자신이 기획한 현대 아트를, 'Junk Culture(쓰레기 문화)'라고 표현한다. 남들이 보기엔 있어 보이지만, 서로 사랑하는 감정의 교류와 대화는 없어진 지 오래된 허물만 남아있는 '수잔'의 현재의 결혼생활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그런 위선적인 성격의 '수잔'이 한 때 사랑했던 한 남자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찌질한 전 남편의 복수극이라는 수식어가 여기저기서 사용되고 있지만 말이다. 

 

<녹터널 애니멀스> 영화 포스터

 

구찌 디자이너, '톰 포드'의 영화라 많은 장면이 아름답게 꾸며질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탄탄한 스토리와 연출력으로 묵직하게 끌고 나가는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영화 포스터는 매력적으로 잘 뽑히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 관심이 1도 없는 사람이라면, 전혀 끌릴만하지 않은 인물 두 명의 희미한 겹침이 메인 이미지로 들어가 있다. 극 중, 에이미(수잔)의 슬픈 눈을 표현하려고 포스터에서 강조를 한 듯 싶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다시 봐도 끌림이 없는 것이, 좋은 영화를 볼 기회를 더 앗아가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엄마처럼 속물적인 마인드로 사랑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결국 엄마처럼 물질적 만족이 없는 사랑에 지쳐가게 되는 '수잔'. 미래에 대한 야망도 없어 보이는 그의 경제력, 섬세하다고 느꼈던 그의 장점과 맞물려 결국엔 나를 보살펴 줄 힘 하나 없는 나약한 단점으로 치부되어 그에게 상처를 주면서 떠나게 된다. 그렇게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한)를 떠난 뒤, 19년이나 지났을 즈음에 그에게서 한 편의 소설이 도착한다. 

 

강렬하게 잔상으로 남아있던 빨간 소파와 소설 속 엄마와 딸의 나체 일러스트레이션

 

밤 늦게 자고, 야밤에 행동하던 '수잔'을 종종 야행성이라고 지칭했었다. 그녀의 별칭을 이용한 소설의 제목 '녹터멀 애니멀스'를 읽으면서 우리들은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로 빠져든 게 된다. '에드워드'가 썼던 소설 속 이야기지만, 자신에게 일어났던 슬프고 상처 받았던 사건을 잔인하고 무섭게. 하지만 소설 속에서도 여전히 가족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방어도 못 하며,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아빠로서, 남편으로서의 '무력함'과 '나약함'을 전면으로 드러낸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글로 읽기만 하는데도 오싹함을 느낄 수 있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소설 속 '토니'와 현실 속 '에드워드'가 제이크 질렌한 동일 인물로 연기 되고 있기 때문에, 이름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새 그들이 동일인물이라고 잠시 착각하기도 한다. '토니'의 아내와 딸이 강간당하고, 빨간 소파에 나체로 버려지는 장면에서 현실 속 '수잔'의 딸도 죽었나?라고 순간 착각하게 된다. '수잔'이 딸에게 전화를 걸어 잘 있냐고 물어보는 현실 장면이 바로 이어짐으로써, 그런 잔인무도한 일은 소설 속에서만 일어났던 거구 나하고 잠시 안심하며 넘어가게 된다. 한가로운 토요일 아침, 남자 친구와 발가벗은 채로 빨간 침대에서 비슷한 자세로 전화를 받던 딸의 장면과 오버랩되던 연출이 멋지면서 자연스럽기도 하고, 새로운 느낌이라 좋았다. 

 

 

쏘 스윗한 눈빛과 다정한 말투 발사 중인 에드워드 (출처: 넷플릭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장면. 뉴욕 겨울, 우연히 다시 마주치게 된 '에드워드'와 '수잔'이 레스토랑에서 대화를 나누는 씬. 저런 얼굴(!!!!)로 너는 여전히 이쁘고, 너는 너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어, 잘할 수 있어라고 복 돋아주는 그의 따스한 위로에 어떤 여자가 안 넘어갈 수 있단 말인가... 이때 나오는 에이미의 얼굴도 존예...(이전에는 이 배우가 이렇게까지 이쁘다고 생각 안 했었는데, 왜 이 영화에서 이렇게 장면마다 다 이쁘게 나오는지 몰겠... 이것이 '톰 포드'의 기막힌 연출 능력?)

 

이때는 '수잔'도 그를 복돋아준다. 훌륭한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경멸하는 자신의 부모님도 좋다고 말하는 그를, 게이 형제가 '에드워드'를 좋아했었다는 말에 전화 한 번 하지 못 했다는 스윗한 말을 해주는 자상한 그를, 그날 저녁, 자신의 집에 초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닐까. 

 

상실감에 어이없어 하는 상황에 놓인 연기 중인 에드워드 (출처: 넷플릭스)

 

제이크 질렌한의 물 오른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볼 가치 상승! 소설 속 보안관이 아내와 딸은 성폭행을 당해 죽게 됐지만,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어 그래도 희망적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제이크 질렌한의 어버버 떨면서 어이없다는 내뱉는 'Promising' 연기가 압권이다. 

 

끝내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된 '에드워드'와 '수잔'. 삐그덕 거리는 그들의 결혼 생활에 '수잔'은 결국 상처를 주고 만다. 소설 작고를 마치고 합평을 해달라고 요청하지만,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기보단 '에드워드'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조언한다. 소설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말라니, 험담도 이런 험담이 있을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의 응원을 바라는 마음은 화살 돋힌 말로 '에드워드'에게 돌아갔다. 빨간 소파에 앉아서 대학교수 일을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수잔'의 상처 주는 말투와 인정하지 않는 '에드워드'의 삶의 방식. 북 스토어에서 책이나 팔면서, 소설 쓰는 삶 따위를 살고 싶냐고 비아냥대는 말투. 내가 다 상처 받았다. 이에 지지 않고, '에드워드'도 그녀에게 상처를 준다. 그녀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네 엄마랑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닮아있다'며. 

 

돌아오지 않는 '에드워드'를 기다리며, 만나기로 했던 레스토랑에서 슬픈 눈을 하며 어딘가 멍하니 응시하는 '수잔'에서 줌 아웃되는 엔딩. '에드워드'의 대사에서 계속 나왔던 '슬픈 눈'을 가진 씨니컬한 그녀는 그에게서 다시 한 번의 로맨스와 용서를 바랐지만, 차가운 현실로 버림받았다.  

 

소설을 읽는 '수잔'이 침대에 누워있을 때, '에드워드'와 반대편 구도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비춰주는 식의 좌우 대칭 샷도 맘에 들었다. 그래서일까, 왠지 모르게 (서양판) 왕가위 영화의 분위기도 느껴지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 속 대사들이 가슴에 묵직하게 다가온다.

When you love someone, 
You work it out. 
You don't just throw it away. 
You have to be careful with it, 
You might never get it again.

 

 

P.S '수잔'이 대학원 생활에서 반할 수 밖에 없었던 외모 열일 하던 '아이 해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연출한 점이 돋보였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잘생긴 '아미 해머'가 '수잔(에이미 아담스)'의 현재 남편으로 나오는 반가운 얼굴이었다. 

 

P.S.S 왜!! 도대체 왜 소설 속에서 보안관은 마지막에 따라간다고 하더니, 왜 따라오지 않아서 '토니'가 그 꼴 당하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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